2021년 01월 21일, 목요일


국토와교통

2021년 1월호
(통권 438호)


간도를 지킨 사람들 (1)


  조병현 박사     입력 2020/11/09 (월)



청전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간도되찾기본부’에서 매년 현충일을 맞이하여 유족대표들과 함께 간도 인물 묘소참배 행사를 가지고 있다. 그때마다 간도 인물에 대한 업적을 회고하고 오늘날 교훈으로 삼기 위해 필자가 강연을 실시하였다.

우리가 간도 인물 묘소를 참배하고 간도 인물사를 연구하는 것은 그 당시 시대상과 맞물린 간도문제의 인식제고와 그들의 활동상을 통하여 그 결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여 오늘의 지표로 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간도 인물을 통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국가관 확립,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간도 연구는 영유권 문제, 간도 지역의 경제와 교육, 문학, 민족 및 지역사회 등에 치중하여 인물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간도본부에서 실시하는 묘소 참배가 간도인물의 업적과 애민정신, 투철한 주권의식을 추념하기 위해 간도 인물을 연구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간도 인물로는 김경문을 비롯하여 이중하와 어윤중, 이범윤, 서상무, 김지남, 유봉영, 김득황 박사 등이 있다. 이중하는 목을 내놓고 간도를 지켰으며, 어윤중은 간도개척을 장려하고 토지소유권을 증명하는 지권을 발급하였다. 이범윤은 간도에 지방행정제도를 확립하고 지적부를 작성하여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서상무는 실효지배를 위해 변계호적안을 작성하여 주권확립 완성하였다. 김득황 박사는 백두산정계비와 토퇴, 석퇴를 직접 답사하고 ‘백두산과 북방강계’를 저술하였다.

이들은 공복으로서 투철한 주권의식과 애민정신으로 외교교섭 수행, 국가이익에 공헌한 애국자, 국가유공자, 독립운동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들의 업적에 못지않은 간도 인물로 백두산정계비 건립에 공헌하고 우리 외교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김지남, 김경문 부자를 배출한 우봉 김씨 가문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간도를 지킨 사람으로 가장 먼저 백두산정계비에 이름을 새긴 김경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2013년 현충일을 맞아 김경문 묘소에서 그의 생애와 업적을 추억함으로써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 보기 위해 실시한 필자의 강연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백두산정계비에 이름 새긴 김경문

청나라의 강희제는 숙종 38년(1712년)에 오랄총관 목극등을 조선에 보내 백두산지역을 탐사하고 국경을 확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우참찬 박권을 접반사로 하고 중국어에 능통한 김지남, 김경문 부자를 동행하게 하여 압록강 상류의 후주에서 영접하였다. 청 사신 목극등은 접반사 박권, 함경도관찰사 이선부를 혜산진에서 함께 만나 백두산으로 향했다. 목극등은 백두산에 오를 때 조선측 대표인 박권과 이선부에게 길이 험하고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무산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이에 조선의 대표는 국경선을 획정하여 경계비를 세우는 국가 백년대계의 중요한 시점임에도 현장에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짐은 역관 김지남, 김경문 부자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김경문(金慶門)은 조선 후기 역관으로 자는 수겸(守謙), 호는 소암(蘇巖), 본관은 우봉(牛峯, 지금의 황해도 금천)이다. 계동공파 8대손으로 아버지는 지남(指南)이다. 조부는 한성부의 판윤을 증직받았다. 소암은 통정대부, 정이품(正二品)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편서로는 <통문관지通門館志>, 홍세태와 공저인 <백두산기>가 있으며, <북정록北征錄>에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활약상이 기록되어 있다.

소암은 1672년(현종 14년) 3월 7일에 출생하여 1737년(영조 13년) 7월 6일 수(壽) 65세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여기 인천관역시 강화군 고려산길 285길(109번지)이다.
 
김경문의 생애는 ‘김경문비’에 잘 나와 있다. 전면에 ‘정부인 담양전씨는 왼쪽에 부묘, 조선국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김공 휘 경문의 묘, 증정부인 청주한씨는 오른쪽에 부묘’가 기록되어 있으며, 후면에 소암의 생애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소암은 어려서 재주가 뛰어남이 어른과 같았다. 18세 때 역과에 한학으로 장원급제하고, 첨정(僉正)과 사역원정(司譯院正)을 지냈다. 1711년(숙종 37년) 청나라에 파견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자들을 잘 다스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청국의 군제와 풍속 및 정치사정을 자세히 보고하여 조정을 깨우쳤다.

1711년 교회(敎誨)로 승진하여 백두산정계비를 세울 때 통역을 맡았다. 1714년에는 경흥의 두만강 북쪽에 청국이 둔진(屯陳)을 두려는 것을 자문을 받들고 가서 힘써 쟁론하여 철거토록 하였다. 또한 1689년 이후부터 생긴 봉황성 난두(欄頭, 북경으로 가던 사신 일행의 물자를 도맡아 대던 상인)의 폐해의 시정을 건의하여 다음 해 청국에 진정하여 일소한 공으로 통정대부에 승진하였다.

영조 즉위년에는 조공품을 감축시켜 가선대부에 오르고, 1725년에는 국경문제를 추론하여 가의대부에 올랐다. 조선 상인들이 청의 상인들에게 채무를 지고, 이를 갚지 못해 장차 발생할 모욕을 염려하여 진주사편에 청국을 방문하여 무역의 폐해를 일소한 공로로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를 받게 되었다.

청의 사신이 올 때마다 응대에 능해서 왕이 가상히 여겼고, 항상 연석에 참석하였다. 어느 때 다리에 병이 났는데 왕이 전교를 내려 문병하였다.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역사와 제자백가를 꿰뚫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한번 눈에 지나친 것은 평생토록 잊지 않았고 문장이 유장하고 조리있는 것이 당대에 이름이 났다.  

김경문의 부고를 들은 풍원부원군 조현명은 “나라에 완급한 일이 일어났을 때 누가 외교를 담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하였고, 영조는 대신들에게 “사방에 어려운 일이 많은 터에 오늘날 누가 다시 김경문 같이 일할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2008년 백산자료원에서 발행한 책 ‘조선후기 외교의 주인공들’에 김경남 부자의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이 책은 대대로 역관을 가업으로 물려받은 우봉 김씨 일가를 소개하고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김지남과 김경문 부자의 업적을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종중에서 번역한 묘비문과 함께 참고하기 바란다.

우봉 김씨는 오래된 성씨이다. 신라 내물왕부터 셈하면 1500년이 되고, 고려 원종 때 우봉군에 봉해진 김원길 시기도 740년 전이다. 그 후 우봉 김씨 가운데 양주파로 분파된 중시조 계동공의 시기도 조선초기로서 지금부터 약 600년 전이다.

우봉 김씨 가문은 고려시대에는 수상도 역임하였으나 이성계의 집권에 협조하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고관이 되지 못하였다. 우봉 김씨는 중인집안으로 역관을 가업으로 삼았다. 족보에 의하면 17세기 이후 약 250년 동안 95명이 역과에 합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학을 포함하면 115회 이상의 잡과중인이 배출되면서 우봉 김씨 가운데 양주파는 의연한 중인집안을 이루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역관(譯官)’은 외국어를 번역하는 통역사를 말하지만, 실제 조선에서 역관은 ‘직업외교관’이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대부분 외국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역관들이 외교상 필요한 모든 일에 관여를 하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300∼400명이나 동원되는 통신사 행렬에 총감독 역할을 했다. 정부에서 파견한 사신들은 해마다 바뀌는 반면, 역관들은 그대로 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사신단의 공동경비로 쌀, 포, 종이 등을 지급했다. 이것으로 무역을 해서 그 경비를 충당하게 했는데 그 권한이 역관에게 있었다. 역관에게 출장비 대신 인삼 8포(80근)을 지원해주고 청나라와 무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8포는 은으로 치면 2000냥, 쌀로 치면 2000석 정도를 살 수 있는 가치로 당시로서는 큰 액수였다.

사신들은 의주에서 120리 떨어져 있는 책문에서 장사를 했다. 책문은 사신을 영접하는 고려문과 봉황성이 위치한 곳으로 당시 평지는 높은 나무를 촘촘히 박아 울타리가 세워져 경계로 삼았다. 청나라 입국에 필요한 수속과 통관 절차가 끝나면 바로 장이 섰다. 중국 각지의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고 책문으로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현재 변문진 변문촌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고려문은 철거되고, 고려역은 일면산역으로 변경하였다.

역관들은 중국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일부 국내 상인들에게도 넘겨졌지만 대부분은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넘겨 두 세배의 차익을 남겼다. 특히, 사대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모자를 수입해 와서 국내 상인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이 모자를 수입하는 가격이 엄청나자 1780년 사신 일행에 동행한 박지원은 “3년이면 헐어버릴 모자를 사기 위해 천년 가도 썩지 않을 은(銀)을 갖다 버린다”면서 모자무역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역관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몇몇 가문에서는 상당한 재력가로서 존재했다. 우봉 김씨 가문도 마찬가지다. 당시 묘제는 <경국대전>에서 신분에 따라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봉 김씨 가문이 양반 못지않은 묘제를 갖출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역관으로서의 김지남과 김경문의 재력과 공이 그 정도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 우봉 김씨 가문의 선산에는 즐비한 석물들과 큰 비석들이 위세를 보여준다. 김지남 조부의 비석은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비석의 뒷면엔 정2품 이상의 양반들만 할 수 있는 두전까지 둘렀다.

중인 집안이고 특히 역관 집안이면서 이렇게 좋은 대리석 비석을 썼다는 것은 당시의 재력적인 면이나 권력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양반 세력의 비호와 그분들의 공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우봉 김씨의 선영이 잘 정비되고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김경문이 의전(義田)을 창설하여 가난한 친족을 구하고, 종장(宗莊)과 종헌(宗憲)이 마련하여 엄격히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봉 김씨가 600년 이상 이어 온 것도 종헌 덕분이다.
 
17세기 후반 조선은 병자호란 후 청을 상대로 거의 굴욕적인 외교를 감내해야 했다. 외교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 역관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였다. 단순한 통역관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외교관 역할과 서양의 근대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역관들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조선이 처한 상황을 간파할 수 있었고, 조선에 무엇이 시급한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역관들은 자신들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많은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들여오는 데 앞장섰고 그로 인해 역관들은 조선후기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눈을 떠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의 외교사에 있어 역관들은 큰 공을 세웠다. 김경문 부자도 마찬가지다. 김지남은 현종 12년 18세의 나이로 역관에 임명되었다. 김경문 부자는 <통문관지(通文館志), 12권 6책(규장각소장)> 편찬하였다.

조선시대 외교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통문관지>는 사역원(司譯院) 역관(譯官) 김지남(金指南)과 김경문(金慶門) 부자가 편찬한 조선시대 중국과 일본 등과의 외교·통상 관계를 수록한 책이다.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전후하여 조선 전기에는 중국의 명(明)나라와 일본의 실정막부(室町幕府)를, 후기에는 중국의 청(淸)나라와 일본의 덕천막부(德川幕府)를 다루고 있다. 조선시대 외교·통상에 관한 필수적인 자료, 사대(事大)·교린(交隣) 정책의 증빙 자료이다.

장현(張炫)은 장희빈의 5촌 당숙으로 1617년에 역과에 수석 합격하면서 역관이 되어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함께 심양으로 수행을 해서 갔다가 그 후 6년 동안 심양에 머물다 돌아와서는 청나라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파악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 동안 30여 차례나 북경을 다니면서 청나라에 관계된 크고 작은 일에는 모두 관여한 내용이 나와있다.

김지남은 여러 차례 청나라를 드나들면서 화약 만드는 법을 새롭게 배워왔다. 김경문은 이 화약 만드는 법을 얻기 위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1698년(숙종 24년)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 국립중앙도서관·규장각 소장>을 지었다.

<신전자초방>은 김지남(金指南)이 북경에 가서 배워 연구한 화약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기록하고 그 방법을 얻기까지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한 책이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남구만(南九萬)의 건의로 1698년(숙종 24년)에 간행되었고, 그 뒤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의 건의로 1796년(정조 20년)에 중간되었다. 이 책은 병서연구뿐만 아니라 18세기 말의 국어를 반영하고 있어 국어사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김경문의 많은 업적 중에서 가장 큰 공은 부친과 함께 백두산정계비 건립에 관여한 것이다. 김경문이 백두산정계비 건립 과정에서 보여준 외교력은 탁월했다. 청나라의 의도와 전략을 꿰뚫고 우리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했다.

백두산정계비에 역관 김경문(金慶門)의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1712년 청나라 황제 강희제는 목극등(穆克登)을 보내 백두산에서 영토의 경계를 확정하려 했다. 이때 우리 조정에서는 접반사 박권을 대표로 보내 협상을 거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도록 했다. 박권은 대표로 가면서 친히 김지남과 김경문을 역관으로 데려갈 것을 요청하여 대동하였다.

이때 김지남의 나이는 63세, 그의 아들 김경문은 직접 목극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끝에 백두산정계비 위치를 결정하였다. 1712년(숙종 37년)에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 데 있어서는 김지남, 김경문의 활약으로 우리가 북쪽으로 500리 땅을 더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묘비문에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712년 목극등이 백두산의 정계를 시찰하러 왔을 때 조정에서는 걱정을 하면서 특별히 공의 부자를 종빈사(從儐使)로 명하여 가서 살피게 하였다. 소암은 풍찬노숙하면서 깊은 수원(水源)과 높은 산을 올라가 구역과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면서 응대함이 분명하고, 영민하여 목극등이 감히 공의 말에 쟁론하지 못하고는 비를 세워 경계를 정하고 떠났다. 이로 인해 우리의 변방 500여 리를 넓히게 되었다. 공이 돌아와 산도(山圖)를 바치니 그 위에 어제(御題) 하시길 “지난 날 경계를 다투던 근심이 이로부터 저절로 사라졌다”고 하셨다.
 
김경문이 “우리 변방을 500여 리 넓혔다”는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김경문 부자의 업적은 백두산정계비 건립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북정록(北征錄), 후손 김용성씨 소장>을 남겼다는 것이다. 협상 대상국인 청나라에는 이만한 기록이 없다.

<북정록>은 1712년(숙종 38년)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국경을 조사하기 위하여 청의 차사(差使)로 온 목극등과 조선 측의 접반사(接伴使)인 박권(朴權) 사이의 교섭 전말을 그 사이에서 통역한 수역(首譯) 김지남(金指南)이 1712년 청측에서 통역관을 요청한 2월에서 조사가 완료된 6월까지 5개월간 쓴 일기이다.

이 자료는 일차적으로 토문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이 최초로 명문화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 자료에는 양국사신들의 대응과 그 일행들의 자세, 심리 그리고 지방 수령이나 주민들의 모습들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자료라 하겠다.

백두산정계비 건립에 참여한 김경문 부자의 활약상은 <북정록>에 잘 나와 있다. <북정록>은 ‘백두산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고귀한 기록이다.
 
나는 거연히 나아가 무릎을 꿇고 청하였다.
“소관은 조선의 백성이요, 백두산 또한 조선의 땅인데 우리나라의 명산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으므로 원컨대 한 번 올라가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길이 너무 멀어 이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대인(목극등)께서는 반드시 유윤길 화사원으로 하여금 산의 형세를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한 폭을 내려 주신다면, 소관의 평생소원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대인의 은덕을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대국의 산천은 그림으로 그려줄 수 없지만 백두산은 이미 그대들 나라 땅이니 그림 한 폭 그려주는 것이 어찌 어렵겠는가?”
“만약에 그것이 대국의 산이라면 어찌 감히 부탁할 마음이 생겼겠습니까?”
“잘 알았네.”
나는 너무나 기쁘고 다행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물러나왔다. 숙소에 돌아와 두 사또에게 나아가 보고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내가 총관(목극등)을 만나 주고받은 말을 아뢰자,
“조정에서 염려하던 것이 오로지 그것이었는데 총관이 ‘백두산은 그대들의 땅’이라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대가 계책을 써서 그들의 뜻을 탐색하고 겉과 속을 꿰뚫어보니 참으로 일을 잘 한다고 하겠네”라고 하였다.

 
당시 청과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두 줄기 강으로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청나라는 이곳 백두산을 청 태조가 발원한 곳이라 하여 성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백두산정계비에 의할 토문강을 국경으로 인정하면 백두산이 중국 땅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북정록에 의하면 백두산은 엄연히 우리 영역에 들어온 것을 알 수 있다. 김경문의 지혜로 백두산을 지켜낸 것이다.
 
조선시대 중국사행이나 외국을 다녀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에서 길게는 12개월이 걸렸다. 그것은 그만큼 교통편이 어렵고 보통 사람들은 쉽게 오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역관들이야말로 변화하는 세상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많은 신문물들이 바로 역관들을 통해 전해졌다. 조선의 지배층이 역관들의 안목을 조금 더 높이 샀더라면 국운이 그렇게까지 기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경문처럼 지혜로운 외교관이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에게는 행운이자 축복이다. 우봉 김씨 가문은 조선후기 외교에 많은 업적을 남긴 외교관 집안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칭송을 받고 있다.

백두산정계비 건립 때 우리 변방 500여 리를 넓히고 백두산을 우리 땅으로 인정받은 김경문의 외교성과는 고려초 거란의 침입 때 서희의 외교 담판과 비견될 만한 외교적 성과다. 지금 우리나라에 조현명과 영조가 말한 바와 같이 김경문과 같이 지혜롭고 유능한 외교관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종중과 나라를 사랑하는 김경문 부자의 애민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김경문의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활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통문관지>와 <백두산기>에서 보듯이 선조들이 목숨 걸고 간도를 지켰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간도 회복을 위한 연구와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우봉 김씨 가문의 번창을 기원드리며, 많은 분들이 백산자료원에서 발행한 ‘조선후기 외교의 주인공들’을 탐독하여 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설 역사의식 함양에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 금할 길 없다.

조병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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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발·수원발 KTX 직결사업도 시공업체 선정 인천·경기 서남부권, 전남 고속철 수혜지역 확대   국토교통부는 고속교통서비스 확충을 위한 호남고속철도 2단계 및 인천발, 수원발 KTX 직결사업 등 3개 사업 6개 공구 노반공사의 시공업체가 선정되었으며, 착공에 들어..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확 바뀌는 제도, 모르면 손해 본다

종부세율·양도세율 인상…분양권도 주택 산입 ‘신특·생초’ 자격완화 등 달라지는 제도 많아   2020년 부동산 시장은 풍부한 유동성과 낮은 금리에 따른 자금 유입으로 거래량이 늘고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시장 안정화와 투자수요 억제를 위해 양도소득세(양도세)와..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스마트시티 추진 동향과 건설산업의 대응 방향

스마트시티가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 업태인 건설산업 관점에서 막연한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어 스마트시티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성을 모색코자 한다. 국내에서.. 이승우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국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과 영국 ‘기업과실치사법’의 비교 분석

국민청원과 함께 지난 6월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재영)은 최근 ‘국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과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 비교 분석’ 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환경과 건설업의 특성을 고.. 손태홍 최수영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부산·대구 등 36곳 조정대상지역 추가지정

주요 과열지역 고강도 실거래 조사·현장단속 착수 주택법 개정…읍면동 단위 규제지역 지정 가능해져   정부가 최근 집값이 급등하고 있는 창원시 의창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신규 지정했다. 또한 부산 9곳, 대구 7곳, 광주 5곳, 울산 2곳 등 4개 광역시 24곳과&nbs..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트러스단열프레임과 발수처리 그라스울을 이용한 건식 외단열 시공기술

결합 방식으로 용접 배제 설치, 안전성·시공성 확보  최근 건축물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에너지 절감 기술 개발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0일 발표를 통해 “탄소중립은 우리나라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기회”라며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함양울산선 중 밀양∼울산 구간 개통

동서 이동 획기적 개선…주행시간 22분 단축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월 11일 고속국도 제14호 함양울산선(145㎞) 중 밀양∼울산 구간을 우선 개통했다. 밀양∼울산 구간은 경남 밀양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잇는 총 길이 45㎞·왕복 4차로 고속도로로, 총사업비 2조 14..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2020년 최우수 택배서비스 ‘우체국·경동’ 선정

2020년 택배 서비스 평가결과 일반택배 분야에서는 우체국택배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기업택배 분야에서는 경동택배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대신, 용마, 성화, 합동택배가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전면 책임감리 도입이 국내 건설산업에 끼친 영향

 「기술사법」 개정 방향 ⑥ 1995년 전면 책임감리 도입이 국내 건설산업에 끼친 영향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 서울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추락하여 사망 17명, 부상 3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붕괴사고로 서울 도심지 .. 박효성 건설기술교육원 겸임교수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간도를 지킨 사람들 (3)

청전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간도개척 장려와 지권을 발급한 어윤중어윤중(魚允中, 1848~1896)은 경제개혁을 추진했던 당대의 온건파 엘리트 관료였다. 서북경략사(西北經略使) 때는 청과의 통상협력을 도모하면서 간도지방을 조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 노력했고 아관.. 조병현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위법한 공사 소음의 참을 한도는?

대법원 2018.11.9. 선고 2015다251935 판결 들어가며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위해서는 일정한 토지에서 토석을 채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토석 채취 작업의 경우 발파소음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발파소음의 경우 관련 법령이 인정하는 보정 기준치를 넘지 않으면 인근 주민들이..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탈모 유전자 스위치를 누가 켜는가?

유전자를 작동 또는 억제하는 스위치가 있다. 예를 들면, 폐암 유전자가 있어도 금연하면 폐암이 걸리지 않지만 폐암 유전자가 없어도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이 걸릴 확률이 12배 이상 증가한다. 탈모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란성 쌍둥이인 세계적인 록그룹 비지스(.. 류영창 박사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2021년 신축년 '한우'의 재발견, 면역력 높여주고 근력강화에 좋아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소띠의 해다. 흰소는 예로부터 신성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소가 십이지신의 두 번째 동물이 된 일화는 유명하다. 소는 자신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누구보다 먼저 출발하여 우직하게 달려가 1등으로 결승점에 도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 김정현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가장 높은 꿈을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곳, 서울 국립항공박물관

‘KOREANS TO HAVE AVIATION FIELD(한국인이 비행장을 가지다).’ 1920년 2월 19일 〈윌로스데일리저널(Willows Daily Journal)〉 머릿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쌀농사로 거부가 된 김종림이 한국 청년을 위해 비행학교를 설립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비행장 부지 40ac(에이커, 약 16만.. 정철훈 여행작가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영토학자 조병현 박사, 장편소설 '간도묵시록' 출간

조병현 박사, 우리 영토 간도를 되찾기 위한 고난의 역경 자전적으로 풀어내공학박사이자 지적기술사인 조병현가 그이 첫 소설, 『간도묵시록』(좋은땅출판사)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토지와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을 연구해 온 저자는 우리가 힘이 없어 빼앗긴 간도.. 이미영 기자 | 국토와교통 2021년 01월호(438호)
[11.19 전세대책] 공공임대 11.4만가구 투입 ‘전세난 돌파’

30평대 중형 임대도 2025년까지 6.3만가구 공급 거주기간 6년 보장되는 ‘공공전세’ 새롭게 도입   정부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3개월 이상 공실인 공공임대를 무주택자라면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다 풀기로 했다. 또한 민간건설사와 매입약정을 통해 다세대, 오피스..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0년 12월호(437호)
“공공임대 투입, 전세수급 불안 해소될 것”

국토교통부 윤성원 제1차관  “공공임대 11.4만호 투입, 전세수급 불안 해소될 것” 윤성원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11월 19일 발표한 전세대책에 대해 “1·2인 가구가 최근 늘어 내년과 내후년 전세 수급이 불안했지만 이번 대책 발표로 수급 불안 문제는 없어지게 됐다.. 박병기 기자 | 국토와교통 2020년 12월호(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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